TAS 프롤로그
2008/08/07 06:50“비 많이 오네.”
영광은 패딩점퍼에 맺힌 빗물을 털어내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기다렸다는 듯 영원이 종종 쫓아가,
“오빠! 비 오는데 우산도 안 가져가고 뭐 했어!” 하고 쏘아붙였다. 자주 보는 광경이다. 그러면 늘 영광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 게 있어.”
“맨날 그러더라? 웃겨! 나는 뭐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인 줄 아나?”
“비 좀 맞고 다닌 것 가지고….”
“이게 그냥 비야!? 겨울비잖아! 감기 걸리면 또 누굴 탓하려고!”
“아무도 탓 안 하니까 좀…”
“오빠가 아프거나 다치면 엄마한테 내가 혼나거든요!”
“알았어. 미안해. 그러니까 좀…”
“좀? 좀 뭐!”
“옷 갈아입어야 하니까 나가. 너 때문에 감기걸리겠어.”
“응.”
영원은 콩알 눈이 돼서 종종걸음으로 방에서 나왔다. 그리곤 거실 중앙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섰다. 나는 책을 읽고 있었지만, 그 어색함은 눈을 일부러 돌리지 않아도 느껴지는 불편함이라 넌지시 말을 건넸다.
“왜 그러고 있어? 와서 앉아.” 그러자 영원은 콩알 눈으로 고개만 끄덕이며 종종걸음으로 소파에 와 조심스럽게 앉았다.
“…저 방에 코트랑 가방이 있어서요.”
“벌써 가려고?”
“오빠 오는 것만 보고 오라고 했으니까요.”
“항상 그렇지만 부모님 덕에 고생이 많다.”
“따지고 보면 오빠 탓이죠.”
영원은 한숨 쉬며 가지런히 놓인 다리를 꼬아 앉았다. 가죽소파의 마찰음. 얘기나 할까, 하고 읽고 있던 책에 책갈피를 끼워 덮었다.
“오늘은 빈손이네?”
“먹을 거 줘봐야 다 먹지도 않을 거면서 왜 물어봐요?”
“미안. 나는 아르바이트하느라 집에서 잘 안 먹게 되고, 영광이도 도시락 사먹잖아.” 멋쩍은 웃음으로 부드럽게 넘겼다.
“내 말이 그거에요! 엄마도 뻔히 알면서 왜 자꾸 먹을 거 챙겨줘라,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부탁이 많은지….”
“부모님들이 다 그렇지 뭐. 네가 이해해.”
“백만 번 설명해도 말 안 들으신다구요….” 영원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너도 자식 생기면 이해하게 될 거야.”
“영빈 오빠는 애 있는 것처럼 말하시네요? 있어요?”
“어…아니.” 나는 다시 책을 펴들었다.
“뭐해요. 애가 어쩌구, 자식이 어쩌구…. 내 동생이랑 벌써부터 가족계획 세워요?” 영광이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그런 거 아냐 인마.”
영광은 영원을 보며 “자 여기, 니 가방이랑 코트” 하고 가방과 코트를 소파 위에 던졌다. 영원은 영광을 노려보며 주섬주섬 코트를 입고 가방을 들었다.
“갈게요.” 영원은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현관으로 향했다. 가벼운 손인사. 중간문이 열렸다.
“벌써 가냐?”
“오래비 꼴 보기 싫어서 일찍 가는 거네요! 멍청아! 아, 영빈 오빠. 우산 좀 빌려갈게요.”
“응, 마음대로.”
“그거 내 우산이야.”
쾅, 하고 중간문이 닫혔다. 잠시 후,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영광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기도 우산 안 가져왔으면서….”